2009 타이페이 (실무자회의)

2009. 12. 27. 14:57Traveling

동아시아국제학술대회와 국제전문방사선사인증기구의 이사국인 한국, 일본, 대만은 매년 실무자회의을 12월에 3개국을 순회하면서 개최한다. 2009년은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려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저녁에 출국하여 19일 회의를 하고, 20일 낮에 귀국하였다. 

회의는 중화민국의사방사학회 사무국 회의실에서 대만에서  린층슨회장과 예지챙이사, 쿠칭원이사, 창칭화이사, 일본에서 기타무라 요시아키회장, 기무라 유미이사, 뮤토 히로이이사와 한국에서 조남수회장, 하대성부회장 그리고 본인이 참가하였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1시가 훌쩍 넘은 시간까지 장장 4시간을 넘겨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주요 안건으로는 국제전문방사선사인증기구  기타무라 요시아키 회장의 2년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대만의 린층슨 회장으로 선출하였으며, 임기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년 동안 하기로 하였다. 주요 안건으로는 2009년도 국제전문방사선사인증기구 시험 보고와 2010년 시험 일정 및 세부 사항에 대한 다양한 의견 교환이 있었으며, 문항 출제 비율 조정, 각 과목당 문항 분포 및 난이도 조절 방안, 자격증 갱신 및 재발행 방안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서 동아시아국제학술대회에 대한 각국 학술대회 일정 논의가 있었고, 아시아지원펀드 운영 방안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중화민국의사방사학회 사무실


회의 플랭카드


3개국 회장


한국측 대표자들


회의를 마치고 단체 사진


늦게까지 열띤 회의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대만 특유의 해산물 가득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먹기 편하게 속을 발라 놓은 바다가재

갈비 찜


각종 해산물 튀김, 특히 굴 튀김이 고소했다.

우리 유산슬 같은 해산물 탕



대만의 예지챙이사


대만에 가면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주는 멋진 사나이 모건 예 (예지챙, 葉志誠).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의리있는 그가 있어 회의때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 멋진 진짜 사나이다. 

사무실 간판

1978년도에 건네진 축하패


사무실을 구경하다가 1978년에 건네진 대만학회 창립 10주년 축하패를 보았다. 30여년 전에 우리 선배님들이 그 어려운 시절에 국제교류를 위해 애쓰신 흔적같아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금이야 그당시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다양한 국제학술대회 및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먹기 살기에도 힘든 시절인데도 미래를 위해 우리 후배들의 비젼을 위해 국제 교류를 했었을거라 생각이 드니 문든 숙연한 마음과 사명감이 가슴한 편에 몰려 왔다.
 

타이페이전철 (MRT)은 지상으로 다닌다.

우리보다 조금 큰 폭의 차량


유난히 창문이 많은 역사

매표소



타이페이는 겨울에도 10도 이상을 보이는 따뜻한 곳이고, 여름에는 40까지 올라가는 더운 곳이다. 이에 전철 역사는 바람이 잘 통하게 대부분 창문으로 이루어 졌으며, 대부분 동전처럼 생긴 전철 코인이 자동 발매가 되나, 단체를 위한 매표소도 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회의와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머리도 식힐겸 단수이 (DAMSHUI)란 곳으로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우리로 치면 월미도라 할까?
이곳은 석양의 아름다운곳이라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간 날을 비가 오락가락해서 석양은 볼 수가 없었다. 젊음의 거리답게 역동적이였고, 다양한 먹을거리와 놀거리가 있었다.

단수이 입구


저물어가는 거리

사람이 북적거리는 거리




거리 구경을 하고 조금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서, 서양식 건물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우리를 배려해서 양식으로 했는데, 그중 이곳의 명물인 돼지 족발 스테이크를 시켰다. 돼지 족을 오랜 시간 바베큐한 것으로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은 쫄깃쫄깃 부드러웠다. 정말 맛있었는데 한사람이 먹기엔 너무 많았다. 결국 반 밖에 먹지 못했다. 

저녁 식사 중에 다같이

정말 맛있는 돼지 족발 스테이크


이태리식 레스토랑



이렇게 짧고 바빴던 여행이 끝났다. 항상 만나면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 같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나누는 이야기는 같은 방사선사로서의 삶을 나눌 수 있고, 우리의 미래를 그릴 수 있고, 또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